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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재정 정책과 경기 대응

by issuedd 2025. 10. 9.

 

한국의 재정 정책과 경기 대응 관련 사진

한국의 재정정책은 경기 안정과 성장 잠재력 확충이라는 두 축을 균형 있게 달성해야 한다. 경기 침체 국면에서는 신속하고 표적화된 확장 재정을 통해 고용과 소득의 하방을 지지해야 하며, 과열 국면에서는 자동안정장치와 지출 구조 조정을 통해 인플레이션과 자산 과열을 억제해야 한다. 동시에 고령화와 잠재성장률 하락, 공급망 재편과 같은 구조적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교육·R&D·디지털·녹색전환 등 생산성 제고 분야로 재정의 포트폴리오를 재배치할 필요가 있다. 본문은 경기국면 판단과 정책 타이밍, 자동안정장치의 정교화, ‘선(先) 체계·후(後) 재정’ 원칙, 재정준칙과 국채관리의 조화, 중앙-지방 재정의 역할 분담 등 실무적 이슈를 포함해 한국형 재정정책의 방향을 다각도로 제시한다.

한국 재정의 과제: 단기 안정과 장기 체질개선의 동시 추구

한국의 재정정책은 ‘경기순응성의 완화’와 ‘구조개혁의 촉진’이라는 이중의 임무를 안고 있다. 첫째, 경기순환 측면에서는 외부 충격과 내수 심리 위축이 반복되는 환경에서 민간 수요가 급격히 둔화될 때 총수요의 공백을 메우고 고용 조정을 완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적시에 집행 가능한 준비된 사업군, 즉 ‘상시대기형 패키지’가 필요하다. 지역 인프라의 소규모 보수·안전점검, 취약계층 에너지 바우처, 중소상공인 유동성 보강 등은 경제 전반에 빠르게 파급되며 승수효과가 상대적으로 높다. 둘째, 구조개혁 측면에서는 잠재성장률 하락과 생산가능인구 감소라는 장기 추세를 반전시키기 위해 지출의 질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단기적 체감 지출의 유혹을 경계하고, 인적자본(유아·기초·직업훈련), 혁신(기초·원천 R&D, 실증·규제샌드박스), 디지털·그린 인프라(전력망·데이터센터·수소·재생에너지 연계), 사회서비스(돌봄·보건·요양)로 무게중심을 이동해야 한다. 또한 재정의 거버넌스도 중요하다. 경기대응을 명분으로 한 비효율적 선심성 지출이 누적되면 조세저항과 신뢰 훼손이 발생하고, 이는 재정정책의 유효성을 떨어뜨린다. 반대로 과도한 긴축은 경기 바닥 확인 전 회복을 꺾어 장기침체 리스크를 높인다. 따라서 신뢰 가능한 중기재정계획과 명료한 재정준칙, 그리고 지출평가 고도화가 필수다. 재정은 ‘한 번 쓰고 끝’이 아니라, 정책·제도·데이터 인프라를 남겨 이후의 민간 투자와 생산성 향상을 견인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중앙과 지방의 역할 분담이 재설계되어야 한다. 복지·돌봄·생활 SOC 등 주민밀착형 사업은 지방이 주도하되, 표준서비스 보장과 재정 격차 완화를 위해 중앙의 균형재원이 설계돼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재정은 단기적 충격흡수 장치와 장기적 경쟁력 강화 장치를 동시에 탑재한 ‘이중모드’로 진화해야 한다.

경기대응 설계: 타이밍·표적·지속가능성의 삼박자

첫째, 타이밍(when)이다. 경기 하강 국면에서는 가계의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계층과 고용 탄성도가 큰 업종을 우선 지원해야 승수가 커진다. 예를 들어 고용유지지원금, 구직·전직 바우처, 임시 소득보전(근로장려금 조기·수시 지급), 주거·에너지 비용 경감은 소비의 급락을 막는 즉효책이다. 반면 설비·인프라와 같은 대규모 지출은 준비된 사업이라 하더라도 집행에 시간이 걸리므로, 경기 바닥 확인 이후 회복 국면의 추세 강화를 목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둘째, 표적(whom·where)이다. 경기 충격의 분포는 불균등하다. 청년·자영업·지역 관광·제조 하청 등 취약부문에 대한 미세조정형 지원은 동일한 총액 대비 더 큰 후생을 만든다. 데이터 기반의 ‘정밀 지원(precision transfers)’을 위해 국세·지방세·사회보험·행정데이터를 안전하게 연계하는 정책데이터 허브가 요구된다. 셋째, 도구(what)다. 자동안정장치의 강화가 핵심이다. 실업급여·근로장려금·지역소비쿠폰·누진세 구조의 자동 작동을 확대·정교화하면 추경 없이도 경기에 반대 방향으로 작동한다. 특히 실업급여의 지급기간·급여 수준을 경기지표에 연동하는 사이클 연계형 설계, 소득하위층에 대한 상시 소득보전의 미세조정 기능, 소비쿠폰의 혼잡·계절·지역 연동형 방식을 제도화하면 정책 타이밍 문제를 줄일 수 있다. 넷째, 재정과 금융의 공조다. 금리·유동성 환경에 따라 동일한 재정지출의 효과가 달라진다. 금리상승기에는 이차보전·보증강화 등 신용파이프 정비를 통해 민간의 자금흐름을 지켜야 하고, 금리하락기에는 공공투자와 주택·도시재생, 녹색전환 프로젝트에 민간자본을 결합한 혼합금융( blended finance )을 활용해 승수를 키워야 한다. 다섯째, 지속가능성이다. 재정여력은 ‘총량’만이 아니라 ‘구조’에서 나온다. 한시성 사업은 종료 시점을 명확히 하고, 상시사업은 성과평가에 따라 ‘예산 자동 트리거(성과 미달 시 자동 감액·개편)’를 적용해 관성지출을 억제한다. 지출 사이드에서는 중복·유사사업 통폐합, 보조금 관리의 투명화, 전자조달·디지털세정으로 효율을 높이고, 수입 사이드에서는 과표 현실화·역진세제 보완·탈루 방지로 기초재원을 다진다. 국채관리는 듀레이션과 고정·변동 비중의 포트폴리오 관리, 개인투자자 대상 국채 직접판매 확대, ESG 국채 발행을 결합해 조달비용과 투자기반을 동시에 관리한다. 여섯째, 중앙-지방의 매칭 구조다. 생활밀착형 경기대응(지역상권, 교통안전, 방재)은 지방주도·중앙매칭으로 속도를 끌어올리고, 대규모 전략투자(반도체·배터리·청정에너지)는 중앙 컨트롤타워 아래 특별회계·기금 방식으로 추진해 민간투자를 유인한다. 마지막으로, 재정의 ‘선체계 후 재정’ 원칙이 중요하다. 취약계층 지원이나 산업전환 보조가 실효를 내려면 보조금보다 제도·인프라가 먼저 갖춰져야 한다. 예를 들어 전기차 보급은 충전망·전력망 보강이 선행될 때 보조금의 효과가 크고, 직업전환 지원은 자격·훈련·채용 연계 플랫폼이 선행되어야 한다. 재정은 이런 체계 구축에 집중하고, 현금성 지원은 체계가 작동하는 범위 내에서 촘촘히 보완하는 방식이 장기적으로 비용 대비 효과가 높다.

한국형 재정의 로드맵: 신뢰 가능성, 민첩성, 생산성

앞으로의 재정정책은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된다. 첫째, 신뢰 가능성이다. 중기재정계획과 재정준칙(채무·적자 기준)의 투명한 운영, 사업별 성과지표와 사후평가의 공개, 국회·민간·학계가 참여하는 독립적 재정평의회는 시장과 국민의 신뢰를 높여 국채조달 비용을 낮춘다. 둘째, 민첩성이다. 경기 급변 시 즉시 집행할 수 있는 ‘표준화된 사업 카탈로그’, 디지털 바우처·모바일 쿠폰·실시간 지급 인프라, 데이터 연계 기반의 표적설계는 정책의 속도를 높이고 낭비를 줄인다. 셋째, 생산성이다. 재정지출의 최종 목표는 성장잠재력 제고다. 인적자본·R&D·디지털·그린 전환·지역균형 인프라에 대한 일관된 투자, 민간규제 개선과 결합된 정책 패키지, 사회서비스와 돌봄 인프라 확충은 장기적으로 세수 기반을 넓혀 재정의 자기 지속성을 높인다. 요약하면, 한국의 재정정책은 단기 경기안정과 장기 체질개선을 동시에 달성해야 하며, 그 방법은 ‘타이밍이 좋은 표적지원’과 ‘지속가능한 지출 포트폴리오’, ‘데이터·제도 기반의 집행 역량’이다. 신뢰 가능한 규율 아래 민첩하고 생산적으로 작동하는 재정은 외부 충격에 강한 경제, 포용적 성장, 혁신 생태계 확장이라는 세 가지 성과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이러한 로드맵을 일관되게 추진한다면 한국 경제는 경기 변동의 파고를 안정적으로 넘고, 고령화와 기술전환의 도전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 성장 궤도를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