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공공부채는 코로나19 팬데믹, 경기 대응을 위한 확장 재정,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복지 지출 증가 등 복합적 요인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과거 한국은 OECD 국가 중 비교적 낮은 국가채무 비율을 유지하며 ‘재정 건전성 모범국’으로 평가받았지만, 최근 들어 증가 속도가 가팔라져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공공부채는 경제위기 시 충격 완화 장치로 기능할 수 있으나, 과도한 누적은 세대 간 형평성 문제, 국가 신용도 저하, 금융시장 불안, 성장 잠재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본문에서는 한국 공공부채 증가의 원인과 현황, 경제적 파급효과, 국제 비교, 그리고 재정 건전성을 지키기 위한 구체적 과제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공공부채 증가의 배경과 현황
한국의 공공부채는 경제 발전 과정에서 여러 차례 중요한 전환점을 맞았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정부는 금융·기업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해 대규모 재정을 투입했고, 이로 인해 단기적으로 채무가 증가했지만 이후 강력한 긴축과 성장 회복으로 빠르게 안정세를 되찾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확장적 재정지출로 부채가 늘었으나, GDP 대비 비율은 여전히 OECD 평균 이하에 머물렀다. 이러한 경험 덕분에 한국은 오랫동안 ‘낮은 국가채무 국가’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은 상황을 급격히 바꾸었다.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정부는 사상 최대 규모의 추경을 연속적으로 편성했고, 방역·지원금·고용유지 대책 등으로 재정 지출이 급격히 확대되었다. 그 결과 불과 3~4년 사이에 국가채무 비율은 40%대에서 50%를 넘어섰다. OECD 평균에 비하면 여전히 낮지만, 증가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국가 중 하나로 평가된다. 공공부채 증가에는 구조적 요인도 존재한다. 첫째, 저출산·고령화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생산가능인구는 줄고 노인 인구는 급증하면서 연금, 건강보험, 돌봄 지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둘째, 복지 지출 확대다. 과거 GDP 대비 복지 지출이 OECD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쳤지만, 점차 보편 복지 확대가 이루어지면서 정부 지출은 구조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셋째, 경기 둔화와 세수 부족이다. 성장률 둔화로 세입 증가 속도가 느려지고, 경기 하강 국면에서는 법인세와 소득세가 줄어들어 재정적자가 심화된다. 넷째, 정치적 요인이다. 선거 주기마다 반복되는 선심성 지출과 단기 부양책은 재정 건전성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요약하면, 한국의 국가채무는 절대 수준보다 ‘증가 속도’와 ‘인구구조 변화’로 인해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현재의 정책 기조가 지속된다면, 장기적으로 국가채무 비율이 70~80% 이상으로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공공부채가 경제에 미치는 다층적 영향
첫째, 재정 건전성 악화다. 부채가 늘어나면 정부는 더 많은 이자를 지급해야 하고, 이는 예산에서 고정적으로 빠져나가는 비용을 늘린다. 결과적으로 교육·R&D·사회간접자본 투자와 같은 미래 지향적 지출 여력이 줄어든다. 이자비용 증가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재정의 경직성’이 심화되고, 결국 세입을 늘리거나 지출을 줄이는 압박이 커진다. 둘째, 금융시장 신뢰 저하다. 국가채무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한국의 재정 건전성에 부정적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국가 신용등급 하락은 국채 금리 상승, 외국인 자본 유출, 원화 가치 하락 등 금융시장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한국처럼 개방 경제에서 외국인 자본의 비중이 높은 경우, 재정 건전성에 대한 의구심은 곧바로 금융시장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셋째, 세대 간 형평성 문제다. 현재의 세대가 사회복지와 소비를 위해 빌린 재정은 미래 세대가 세금으로 상환해야 한다. 고령화 사회에서 젊은 세대의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부채 부담이 집중되면 세대 갈등이 심화되고 사회적 신뢰가 약화될 수 있다. 넷째, 경기 대응 여력 축소다. 공공부채는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출을 확대할 수 있는 여력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미 높은 부채를 지고 있는 상태에서는 추가 재정 확대가 어려워져 경기 대응력이 떨어진다. 이는 외부 충격에 취약한 한국 경제의 안정성을 위협한다. 다섯째, 성장 잠재력 약화다. 부채가 민간의 자본조달을 제약하는 ‘구축 효과(crowding out)’를 유발할 수 있다. 정부가 대규모로 국채를 발행하면 금리가 상승하고, 이는 기업의 투자비용을 높여 민간 투자를 위축시킨다.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 잠재력을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여섯째, 국제비교에서의 시사점이다. 일본은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200%를 넘어섰지만, 자국 내 투자자 비중이 높아 위기를 관리하고 있다. 반면 그리스는 국가채무 비율이 100%를 넘어서면서 재정위기를 겪었다. 한국은 아직 절대 수준이 낮지만, 인구구조 악화와 개방 경제 구조로 인해 그리스형 위기의 위험을 무시할 수 없다.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한 정책 과제
한국이 공공부채 증가에도 불구하고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중기 재정준칙 강화**다. GDP 대비 국가채무와 재정적자에 상한선을 두고, 이를 법제화해 정치적 상황에 따른 단기적 재정 남용을 방지해야 한다. 이미 여러 선진국은 재정준칙을 통해 부채 증가 속도를 통제하고 있다. 둘째, **지출 구조조정**이다. 단기적 인기 위주의 현금성 지출을 줄이고, 장기적 성장 기반을 강화하는 교육, 연구개발, 디지털·그린 전환, 인프라 투자에 재정을 집중해야 한다. 지출의 양보다 질이 중요한 시점이다. 셋째, **세입 기반 확충**이다. 저출산·고령화로 세수 기반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합리적인 세제 개혁이 필요하다. 소득세·법인세의 과표 확대, 역진적 조세 구조 개선, 조세 회피 방지, 디지털세·환경세 등 새로운 세원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사회보험 개혁**이다. 연금·건강보험의 재정 불균형을 조기에 해소하지 않으면 국가 전체의 재정 건전성이 위태로워진다. 보험료율 조정, 수급 연령 상향, 효율적 지출 관리가 불가피하다. 다섯째, **정치적 책임성 확보**다. 선거를 앞둔 선심성 지출 유혹을 줄이기 위해 국회와 정부의 재정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하고, 독립적 재정평가 기구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여섯째, **경제성장과 부채 관리의 균형**이다. 단순한 긴축만으로는 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경제성장률이 국채이자율보다 높게 유지될 때만 부채 비율은 안정화된다. 따라서 혁신·투자·노동시장 개혁을 통한 성장 잠재력 확충이 부채 관리의 핵심 전략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의 공공부채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경제 구조 전반과 직결된 문제다. 지금의 속도와 구조가 지속된다면 장기적 위험이 커질 수 있다. 그러나 철저한 관리와 개혁이 병행된다면, 공공부채는 위기가 아니라 경제 안정과 성장의 유연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기 정치논리가 아니라 장기적 안목과 사회적 합의다. 이를 통해 한국은 재정 건전성을 지키면서도 경기 대응과 복지 확대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