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적자 확대는 단기적으로 경기 부양 효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 부채 증가, 금리 상승, 인플레이션, 그리고 세대 간 부담 전가라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본 글에서는 재정적자의 구조적 원인과 그로 인한 경제적 위험 요인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지속 가능한 재정운용을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국가 재정, ‘부채의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재정적자에 대한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경기 침체와 물가 불안이 공존하는 ‘복합 경제위기’ 속에서 각국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수십조 원 규모의 추경이 반복되면서 국가채무는 2020년 이후 급격히 증가했다.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국가채무는 1,200조 원을 넘어 GDP 대비 50%에 근접하고 있다. 물론 재정적자는 단기적으로 경기 회복을 유도할 수 있다. 정부의 지출 확대는 소비와 투자를 자극하고, 일시적으로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반복되면 재정 건전성이 훼손되고, 장기적으로는 경제 전체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한다. 즉, “지금의 확장재정이 미래의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재정적자 확대의 이면에는 언제든 위기로 전이될 수 있는 구조적 위험이 존재한다.
재정적자 확대의 주요 위험 요인
1. 국가 부채 증가와 신용도 하락
재정적자가 지속되면 정부는 부족한 재원을 채권 발행을 통해 충당하게 된다. 그 결과 국가 부채가 빠르게 증가한다. 부채 비율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국가의 상환 능력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할 수 있다. 이는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 이탈과 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 일례로, 남유럽 재정위기 당시 그리스는 GDP 대비 국가부채가 120%를 넘어서며 국제시장에서 채권 발행이 어려워졌고, 결국 구제금융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2. 금리 상승과 민간 투자 위축
정부가 적자 재정을 메우기 위해 국채를 대량 발행하면, 시장의 자금 수요가 증가한다. 이는 시중 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 금리가 오르면 기업의 차입 비용이 증가하고, 민간 투자가 줄어든다. 즉, 정부 지출 확대가 오히려 민간경제를 위축시키는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가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재정정책의 효과가 반감되고, 성장 동력이 약화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3. 인플레이션 압력 확대
재정적자 확대는 통화공급 증가와 연결될 수 있다.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고 중앙은행이 이를 매입할 경우, 시중에 돈이 풀리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진다. 물가 상승은 실질소득을 감소시키고, 소비 여력을 약화시킨다. 특히 저소득층일수록 물가에 민감하기 때문에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다. 즉, 재정확대는 단기적 경기부양에는 도움이 되지만, 물가 안정이라는 또 다른 정책 목표를 위협하는 양날의 검이 된다.
4. 세대 간 부담 전가와 재정 지속가능성 악화
오늘의 재정적자는 내일의 세금 부담이다. 정부가 적자를 통해 현재의 소비를 늘리면, 그 빚은 결국 미래 세대가 갚아야 한다. 한국의 경우 빠른 고령화로 인해 복지 지출은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생산 가능 인구는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부채 상환 능력이 점점 약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재정적자 확대는 단순한 회계상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 간 형평성과 지속가능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5. 환율 및 금융시장 불안정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급증하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해당 국가의 통화 가치를 의심하게 된다. 이는 환율 불안과 자본 유출로 이어진다. 특히 개방경제인 한국은 해외 투자자금의 흐름에 민감하기 때문에, 재정 건전성 악화는 외환시장 불안으로 직접 연결될 수 있다. 원화 약세, 외국인 채권 매도, 금리 급등 등은 모두 재정불안의 신호로 작용한다.
지속 가능한 재정을 위한 전략
1. 확장재정의 ‘출구전략’ 필요
단기 경기 대응을 위한 재정지출은 불가피할 수 있지만, 경기 회복 국면에서는 지출 규모를 점진적으로 축소해야 한다. 지속적인 재정확대는 결국 부채의 눈덩이를 키우고, 미래의 선택지를 좁힌다. 따라서 경기와 물가 상황에 맞는 ‘탄력적 재정운용’이 필요하다.
2. 세입 기반 확충과 조세구조 개편
지속 가능한 재정은 건전한 세입 구조에서 출발한다. 탈루 방지, 디지털세 도입, 고소득층·대기업 중심의 조세개혁 등을 통해 세입을 안정화해야 한다. 또한 단순한 세금 인상이 아니라, 경제 성장과 투자 촉진을 동시에 고려한 조세 구조 개편이 병행되어야 한다.
3. 지출 구조의 효율화
모든 예산은 ‘효과 대비 비용’의 원칙에 따라 검토되어야 한다. 중복사업 통폐합, 복지의 선별성 강화, 비효율적 보조금 축소 등으로 재정 효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 AI·데이터 기반의 재정 분석 시스템을 도입하면, 정책별 재정효과를 실시간으로 평가해 낭비를 줄일 수 있다.
4. 재정준칙 도입과 엄격한 관리
국가 부채와 적자 한도를 명확히 설정하고, 이를 법제화하는 ‘재정준칙(Fiscal Rule)’ 도입이 중요하다. 이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재정정책이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고, 시장 신뢰를 유지하는 효과가 있다. 한국도 OECD 평균 수준의 재정준칙을 강화하여 장기적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5. 경제성장과 재정건전성의 균형
결국 재정건전성은 성장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정부는 긴축 일변도가 아닌, 생산성 향상과 혁신성장을 병행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스마트 인프라 투자, 신기술 연구개발, 인적자원 강화 등 미래 성장 기반을 확충하는 방향으로 재정을 운용해야 한다. 재정은 경제의 엔진이지만, 동시에 브레이크가 되어야 한다. 과도한 확장은 단기 속도를 높일 수 있지만, 제동이 풀리면 방향을 잃는다. 지속 가능한 재정정책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신뢰와 미래 세대의 삶을 지키는 약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