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3년 동안 무엇을 해왔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경력 단절 후 복직해서 열심히 달려왔는데, 어느 날 문득 제자리에 멈춰 선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 성과는 눈에 띄지 않고, 관계는 제 마음처럼 풀리지 않고, 지친 마음만 쌓여갔습니다. 그러다 박윤진 작가의 '다정한 기세'를 읽으면서 깨달았습니다. 제가 찾던 답은 '더 열심히'가 아니라 '다르게' 일하는 법이었다는 걸요.

20년 경력이 내린 역설적 결론
박윤진 작가는 제일기획과 대홍기획에서 20여 년을 카피라이터로 일했습니다. 광고업계에서 커리어를 쌓으며 워커홀릭과 번아웃을 반복적으로 겪었다고 합니다. 그가 오랜 시간 끝에 내린 결론은 의외였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려면 그 일을 '덜'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이 처음엔 이해가 안 갔습니다. 일을 사랑하면 더 해야 하는 게 아닌가요? 그런데 저자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관계가 오래간다고 말합니다. 일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법을 배우면서 오히려 더 멀리 갈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제 경험상 이 부분이 정말 공감됐습니다. 복직 후 저는 모든 일에 완벽하려고 했습니다. 빨리 따라잡아야 한다는 조급함에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죠. 그런데 6개월쯤 지나니 몸과 마음이 먼저 무너지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필요했던 건 더 많은 시간이 아니라 적절한 페이스 조절이었습니다.
껍데기가 아닌 진짜 내 모습
저자는 퇴사 후 '서울라이터'라는 브랜드를 런칭하며 프리랜서로 전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명함에 적힌 회사명도, 그럴듯한 직함도, 반짝이는 타인의 시선도 언젠가는 벗겨진다는 것이었죠. 결국 남는 건 진짜 내 모습뿐이라는 겁니다.
이 대목을 읽을 때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회사라는 껍데기에 기대고 있었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됐거든요. 직장인으로서 제 가치를 증명하려고 애쓰면서도, 정작 회사를 떠났을 때 남을 제 본질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자는 본업에 대한 정체성을 강조합니다. 요즘은 여러 직업을 병행하는 게 트렌드지만, 그래도 중심이 되는 본업은 분명히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코스 요리에 메인이 있듯, 아이돌 그룹에 센터가 있듯 말이죠. 그에게는 카피라이터가 바로 그 중심축이었습니다.
화를 다루는 건 마음을 다듬는 일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 중 하나는 감정 관리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저자는 화를 다루는 건 곧 마음의 결을 매끄럽게 다듬는 일이라고 표현합니다. 거친 감정을 사포질하고 날카로운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가는 과정을 거치면 더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사람이 된다는 겁니다.
직장 생활을 하며 겪은 무수한 피로와 짜증의 시간이 결국은 자산이 됐다는 저자의 말에 위로받았습니다. 그 시간들 덕분에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됐고, 인내와 견딤이 만들어준 감정의 겹 덕분에 쉽게 화내지 않고 상황을 웃어넘길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솔직히 제가 요즘 가장 힘든 부분이 바로 이 감정 조절이었습니다.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을 때, 동료와의 관계가 생각대로 풀리지 않을 때 쌓이는 감정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거든요.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모든 과정 자체가 저를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열심히가 아니라 즐겁게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건 일과 일상을 대하는 '다정한' 마음가짐입니다. 일하는 동안 고난을 겪다 보면 냉소적이고 관성적으로 변하기 쉽지만, 매사에 긍정적으로 시도하고 보는 다정한 마음이야말로 지치지 않고 오래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합니다.
책에는 크리에이티브 근육을 기르는 법, 마음 리터러시를 높이는 법, 안식년의 필요성, 좋아하는 마음의 힘 등 실무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반복적으로, 꾸준히, 오래라는 키워드는 단순하지만 강력했습니다. 좋은 콘텐츠를 섭취하고 자신만의 공간에 계속 글을 쓰는 것처럼, 작은 실천이 쌓여 큰 변화를 만든다는 겁니다.
저자는 인생을 열심히 살기보다 즐겁게 살기를 연습 중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일을 다 열심히 하면 언젠가 지치기 마련이니, 더 열심히 할 일과 덜 열심히 할 일을 구분해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조언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제가 지난 3년간 정말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제 패턴대로 조금씩 발전하고 있었던 거죠. 진화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저자의 말처럼, 매일 크고 작은 전쟁을 치르는 것 자체가 서서히 이루어지는 진화의 과정이었습니다. 직장 생활로 지쳐 있는 분들이 이 책을 읽고 저처럼 따뜻한 힘을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힘내지 않아도 힘은 쌓여가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