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디지털 세는 디지털 경제 확산으로 기존 국제조세 질서가 기업 활동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다국적 플랫폼과 무형자산 중심의 가치창출이 국경을 초월하면서, 물리적 사업장이 없더라도 사용자 기반·데이터·브랜드·알고리즘이 이윤의 핵심 원천이 되었다. 그 결과 과세권은 생산지와 소비지 사이에서 충돌하고, 조세회피를 둘러싼 논쟁이 심화되었다. OECD/G20 포괄적 구조(이른바 ‘필라 1·필라 2’)는 시장 소재국에 새로운 과세권을 부여하고, 글로벌 최저한세를 통해 과세 하방경쟁을 억제하려는 시도다. 한국 기업에는 연결 재무제표 기준 수익 인식, 관할 간 세액공제·상계, 이전가격 정책 정비, 조세·공시·IT 시스템의 대대적 업데이트가 동시에 요구된다. 반도체·IT·게임·콘텐츠·플랫폼뿐 아니라 전통 제조업까지 글로벌 가치사슬(GVC) 전반에서 세후 수익성, 입지 전략, 계약 구조의 재설계가 불가피하다. 본문은 디지털세 구조와 작동 메커니즘, 한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 리스크와 기회요인, 대응 로드맵을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디지털 전환과 국제조세 패러다임의 충돌
디지털 전환은 기업의 가치창출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물리적 자본과 재고, 공장이 주도하던 시대에서 데이터·소프트웨어·네트워크 효과·브랜드와 같은 무형자산이 초과이윤의 핵심이 되었다. 사용자의 참여·콘텐츠·행동 데이터는 광고·구독·거래중개 수익을 증폭시키고, 규모가 커질수록 더 강해지는 네트워크 효과는 글로벌 플랫폼에 우월한 시장지위를 제공한다. 그러나 기존 국제조세는 ‘고정사업장(PE)’과 ‘독립기업원칙(ALP)’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물리적 존재가 없으면 과세권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여러 국가가 독자적 디지털 서비스 세(DST)를 도입했지만, 다중 과세·무역 갈등 우려가 커졌다. 이에 OECD/G20는 합의 틀을 통해 국가 간 중복과세를 줄이고 시장 소재국의 과세권을 제도화하는 방향을 모색했다. 한국 기업에게 이 변화는 회계·세무·법무·IT를 아우르는 전사적 이슈다. 우선 수익 인식과 가치배분의 논리가 바뀐다. 사용자 기반·브랜드·알고리즘 등 무형자산이 창출하는 잔여이익의 일부를 시장 소재국에 배분(필라 1) 해야 하고, 글로벌 그룹 차원에서 실효세율이 최저 기준에 미달하면 추가세액(Top-up Tax)을 부담(필라 2) 해야 한다. 따라서 본사는 물론 해외 자회사·지주사·지식재산(IP) 보유 법인의 계약 구조, 이전가격 정책, 라이선스·서비스 계약의 대가 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 더 나아가 생산거점·물류허브·판매법인의 입지전략, 로열티·수수료의 흐름, 인력·데이터의 배치까지 ‘세후가치 최적화’ 관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 디지털 세는 단순히 세금이 늘어나는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운영모델(Operating Model) 자체를 재구성하게 만드는 구조적 변화다.
필라 1·필라 2의 핵심 내용과 한국 기업 영향
첫째, 필라 1(시장 소재국 과세권 확대)의 작동 원리다. 초과 이익(통상 연결 매출이 일정 기준을 넘고 이익률이 기준치를 상회하는 그룹)의 일부를 ‘금액 A(Amount A)’로 정의해 시장 소재국에 배분한다. 이는 물리적 사업장이 없어도 사용자·소비자가 있는 국가가 과세할 수 있게 하는 장치다. 동시에 국가 간 분쟁을 줄이기 위한 조정·상계 메커니즘, 이중과세 제거 절차가 마련된다. 한국의 빅테크·게임·콘텐츠·전자 상거래 기업은 해외 매출이 큰 시장에서 ‘사용자 기반 이익 배분’ 이슈가 발생하며, 광고·구독·수수료 등 복합 수익 모델을 국가별로 해체해 신고해야 한다. 마케팅·배포·플랫폼 수수료 등 기능별 이익을 구분하고, 브랜드·IP의 잔여이익과 금액 A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둘째, 필라 2(글로벌 최저한세)의 구조다. 연결 기준 매출이 일정 규모 이상인 다국적 그룹은 각 관할에서 실효세율이 글로벌 최저 기준(예: 15%)에 못 미치면 ‘추가 과세(Top-up)’를 납부한다. 모회사 관할의 ‘소득 포함 규칙(IIR)’, 자회사 관할의 ‘부족세액 징수 규칙(UTPR)’, 국내최저한세(QDMTT) 등 다층적 장치가 적용되어, 저 세율 관할로 이익을 이전할 유인이 줄어든다. 이에 따라 한국 그룹은 해외 저 세율 법인의 이익이 추가 과세 대상이 될 수 있고, 반대로 한국이 국내최저한세를 적시에 도입하면 과세권을 국내로 환류할 수 있다. 실무적으로는 관할별 GloBE ETR(실효세율) 계산, 장부·세무조정, 영구·일시적 차이의 관리, 세액공제·환급의 정합성 확인이 핵심 과제가 된다. 셋째, 산업별 파급이다. (1) ICT·플랫폼은 금액 A 배분과 국가별 매출 추적, 데이터 거버넌스·쿠키 제한 등 규제 결합으로 준법비용이 상승한다. 맞춤형 광고·앱 내 결제·구독 번들링 등 복합 과금 구조를 국가별로 해체해야 하므로, 결제게이트웨이·앱스토어·광고 네트워크의 계약서도 재정비가 필요하다. (2) 반도체·장치산업은 필라 2 영향이 상대적으로 크다. 생산거점이 여러 국에 분산되어 있고, 세액공제·보조금이 많은 만큼 GloBE 기준에서 어떤 항목이 ‘적격’인지 판단해야 한다. 공장 신증설 인센티브가 실효세율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시뮬레이션하고, 국내최저한세와의 상호작용을 고려해야 한다. (3) 게임·콘텐츠·클라우드는 사용자 기반 매출 비중이 높아 금액 A 배분 리스크가 크다. 지역별 저작권·퍼블리싱·서버 위치를 재설계하고, 로열티·수수료의 암묵적 이전가격을 투명화해야 한다. (4) 전통 제조·소비재는 전자상거래·D2C 전환이 빠를수록 디지털세 노출이 커진다. 크로스보더 D2C, 구독형 애프터서비스, 소프트웨어 탑재형 제품의 ‘디지털 부가가치’가 과세 범위를 넓히기 때문이다. 넷째, 재무·IT·컴플라이언스 인프라의 대수선이다. 디지털세 준수는 회계 차원의 수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국가별 고객위치 파악, 결제수단 식별, VAT/원천세와의 중복 체크, 데이터 보존·접근권한 통제, 조세정보 교환에 대비한 로그·증빙 체계까지 통합되어야 한다. ERP·데이터웨어하우스(DWH)·데이터 레이크에 ‘관할코드’와 ‘고객소재지 메타데이터’를 일관되게 기록하고, 매출·원가·무형자산 보상(로열티·수수료·코스트셰어링)의 룰을 기계적으로 재현 가능한 형태로 내장해야 한다. 또한 분쟁 대비를 위해 ‘사전합의(APA)·상호합의(MAP)’ 전략을 병행하고, 금액 A 관련 분쟁해결 패널 절차에 필요한 문서 템플릿을 표준화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전략적 기회다. 글로벌 최저한세는 저 세율만으로 투자를 유치하기 어렵게 만든다. 한국 입장에서는 R&D 인력·공급망·인프라 우위를 강화하면 세후 메리트가 상대적으로 커진다. 또한 국내최저한세를 정교하게 설계하면 해외에서 납부될 추가세액을 국내에서 흡수해 재정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기업 측면에서는 ‘세후 ROIC’ 중심의 포트폴리오 재편, IP 재배치(코스트셰어링에서 DEMPE 기반 보상으로), 지역 본부의 기능 강화, 시장국 현지화(로컬 데이터센터·고객지원)의 브랜드·매출 상승효과를 결합하면 총 가치 창출이 가능하다.
한국 기업의 대응 로드맵: 세무·운영·전략의 통합
디지털세 시대의 정답은 ‘일관된 데이터에 기반한 사전 대응’이다. 첫째, 거버넌스를 세워야 한다. CFO·세무·법무·IT·사업부가 참여하는 전사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필라 1·필라 2 영향 평가, 관할별 실효세율(GloBE ETR) 베이스라인 산출, 금액 A 가능성 진단을 분기 단위로 업데이트한다. 둘째,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정비한다. 고객 소재지, 결제 채널, 앱스토어 수수료, 광고 인벤토리, 서버 위치, 라이선스·용역 대가가 관할코드와 함께 ERP/DWH에 기록되도록 표준화를 진행하고, 증빙 문서·로그의 보존정책을 조정한다. 셋째, 계약·가격결정 구조를 재설계한다. IP 보유·개발·운영의 DEMPE 기능에 맞춰 로열티율·서비스 피를 재정렬하고, 국가별 매출 인식·인도조건·리스크 귀속을 명확히 한다. 넷째, 분쟁 예방 장치를 늘린다. APA·MAP의 활용, 상호합의 자료 패키지의 사전 준비, 금액 A 분쟁절차 대응 매뉴얼을 마련해 중복과세 가능성을 낮춘다. 다섯째, 입지·조달·브랜딩 전략을 연결한다. 저 세율 기반의 ‘페이퍼 하우스’보다 R&D·제조·데이터센터·서비스 조직이 실제로 존재하는 실질 중심 구조를 채택하면 디지털세 리스크가 줄고, 고객 신뢰와 브랜드 경쟁력도 높아진다. 여섯째, 내부 역량을 키운다. 세무 회계와 데이터 엔지니어링을 겸비한 인재를 육성하고, 외부 자문과 협업하되 핵심 데이터·정책은 내부화한다. 일곱째, 정책 대화에 참여한다. 업계 단체·정부와 협력해 국내최저한세의 적격 공제 범위, R&D 인센티브의 GloBE 적격성, 문서화 부담 완화 등 현실적 개선안을 제시해야 한다. 요컨대 글로벌 디지털 세는 ‘세부담 증가’라는 단편적 이슈가 아니라, 기업의 운영모델·데이터·계약·입지 전략을 재정렬하게 만드는 구조적 게임체인저다. 한국 기업이 선제적으로 거버넌스·데이터·계약을 정비하고, R&D·브랜드·현지화의 실질 경쟁력을 결합한다면 세후가치 기준에서도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반대로 대응이 지연되면 이중과세·분쟁·공급망 혼선으로 비용이 누적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재빠른 진단과 표준화, 그리고 전사적 실행이다. 그것이 디지털세 시대 한국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